콩코드호텔 등 4곳 장기 휴‧폐업 APEC 정상회의 앞두고 걸림돌 규제와 부실한 관리부재 등 원인       경주 보문관광단지가 다시 한 번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이자 연간 1,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도시’ 경주. 그 중심부에 자리한 보문관광단지는 1970년대 후반 세계은행 차관 2,500만 달러를 포함한 600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들여 조성된 국내 최초의 종합관광휴양지다. 하지만 이곳 한복판에 자리한 폐업호텔들이 수년째 방치되며, ‘대한민국 관광심장’이란 명성에 심각한 오점을 남기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콩코드호텔이다. 1979년 보문로 중심에 자리 잡은 콩코드호텔은 부지 3만5505㎡, 건축면적 5만7939㎡ 규모로 지하 1층~지상 8층, 객실 234실을 갖춘 보문단지 상징적인 호텔이었다. 그러나 건물 노후화와 운영 적자로 인해 2015년 1월 폐업 이후 8년이 지나도록 사업추진이 전혀 이뤄지지 않으며 흉물로 방치되어 있다. 진출입로는 끈으로 막혀 있고, 건물 외벽은 낡고 바래졌으며, 정원수조차 손질되지 않아 관광객과 인근 상가 업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제는 콩코드호텔만이 아니다. 한국콘도, 경주조선온천호텔, 신라밀레니엄파크 등 보문단지 내 총 4곳의 숙박시설이 휴‧폐업 상태로 남아 있으며, 일부는 10년 가까이 장기 방치되고 있다. 관광단지 내 중심상가도 2019년 복합쇼핑몰 조성을 목적으로 매각되었으나 이후 사업이 무산되어 여전히 공터로 남아 있다. 이처럼 상업·숙박시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서 보문관광단지 전체의 미관과 기능, 경쟁력이 동시에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콩코드호텔을 인수한 유림E&C는 애초 리모델링을 통해 재개장을 계획했으나 예상 비용을 초과한 수백억 원 규모의 공사비용, 코로나19로 인한 관광경기 침체, 지진 등 외부 변수로 인해 개발이 지연됐다”고 밝혔다. 이후 신축 계획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건축자재 급등 등으로 사업은 다시 표류 중이며, 현재는 매각을 추진 중이나 우선협상대상자조차 확보되지 못한 상태다.     보문호를 포함한 유선사업도 사실상 중단됐다. 오리배 등 호반 관광이 이뤄지던 보문호는 20년 넘게 준설이 이뤄지지 않아 상류 토사가 쌓이고,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업용수 공급 탓에 수량 확보도 어려워 관광 자원으로서 가치가 급격히 퇴색됐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방치가 가능했을까? 핵심은 ‘규제’와 ‘관리 부재’다. 보문관광단지를 관리하는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는 개발 권한을 민간에 넘긴 상황에서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간사업자와의 착공 기한 계약도 국민권익위 시정 권고로 인해 강제성이 약화됐고, 초과이익 환수 조항도 없어 사업자에 대한 실질적 제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규제도 문제다. 2009년 국토계획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유원지 내 건폐율은 30%까지 상향됐지만, 보문단지는 여전히 20%의 건폐율을 유지하고 있어 시설 확대나 리모델링 시 사업성 확보가 어려운 구조다. 신라밀레니엄파크를 인수한 힐튼호텔 측은 휴양·문화시설 구역을 숙박지구로 변경해 6성급 프리미엄호텔을 짓겠다고 제안했지만, 공사는 ‘특혜 시비’, ‘형평성’ 문제를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 개최가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21개국 정상과 정부대표단, 기업인 등 2만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행사지만, PRS(프레지덴셜 스위트)급 숙박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경주에는 힐튼과 라한셀렉트(옛 현대호텔) 두 곳만이 5성급이며, 고급 스위트룸은 8개에 불과하다. 회의장인 HICO와 가까운 콘도 및 연수원들은 격식 있는 국가 행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에 따라 시와 도는 PRS 위원회를 구성하고 숙박시설 리모델링, 관광 편의시설 확충 등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경주시 역시 보문단지 내 조례 규정에 따라 호텔 리모델링 시 보조금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관련 법적 지원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위해선 규제 완화, 개발계획 재검토, 민간투자 유도 등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강하다.     보문관광단지는 경주의 자존심이자 미래다. 단순한 관광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곳은 경주경제의 심장이며, 대한민국 관광브랜드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수년째 폐업 건물이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행정기관이 수수방관하는 구조 속에서 ‘APEC 성공 개최’, ‘세계적 관광지 도약’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할 수 있다.   이제는 보문단지를 1970년대의 틀에서 벗어나 미래형 관광단지로 리디자인(re-design) 할 시점이다. 규제 혁신, 민관 협력, 지속가능한 개발 전략 없이는 아무리 큰 행사를 유치해도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경주시와 경북도, 문화관광공사, 시민과 업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보문관광단지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할 때다. 지금 이대로라면 ‘경주 관광 르네상스’는 다시 오기 어려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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