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개항 100년 맞은 감포항의 어제와 내일<上>
감포항이 올해 개항 100주년을 맞았다. 1925년 1월 16일 개항한 이래, 감포항은 동해안의 대표 어항으로 자리 잡으며 경주의 해양경제를 견인해왔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감포항은 어업의 중심지이자 경주의 해양문화사를 간직한 살아있는 역사 현장이다.
감포항의 지명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지형이 한자 `달 감(甘)` 자를 닮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라시대 감은사가 있는 포구라는 뜻에서 감은포라 불리다가 감포로 축약됐다는 설이다. 이름에서부터 바다와 깊은 인연을 지닌 감포는, 그 지리적 특성과 해양환경으로 일찍부터 어항으로 발전해왔다.
개항 초기, 감포는 그야말로 ‘격동의 바다’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어민들은 천혜의 어장을 노리고 감포로 대거 진출했다. 당시 한국 어민들의 어구나 어법은 단순했지만, 일본 어민들은 동력선과 근대화된 어구를 이용해 막대한 어획량을 기록했다. 이는 감포항의 상업화와 도시화로 이어졌으며, 일본인 자본가들의 요릿집과 유흥업소가 감포 거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특히 1937년에는 감포가 읍으로 승격될 만큼 활황을 누렸다.
감포항의 대표 어종은 단연 가자미다. 『지봉유설』에는 가자미가 동해에서 나기 때문에 `접역(鰈域)`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감포 앞바다는 깊은 수심과 한류·난류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고등어, 전갱이, 삼치, 방어, 정어리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는 어족자원의 보고다. 현재도 가자미잡이는 감포의 주요 어업 중 하나로, 외줄낚시, 자망, 주낙 등 다양한 어법이 활용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감포읍은 경주군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다. 1931년 기준, 경주읍이 1만7432명이었던 반면, 감포와 인접한 양남·양북면을 포함하면 3만명을 넘는 인구가 살았다. 이 중에는 일본인도 다수 포함돼 있었으며, 이들은 감포항을 거점 삼아 동해안을 누비며 어업을 펼쳤다. 그들이 세운 적산가옥은 지금도 감포읍 3리 주변에 남아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2층 목조 건물로, 감포의 근대 유산으로 보존 가치가 높다.
감포항은 1995년 12월 29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며 그 상징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며 교통 여건 악화, 어업 환경 변화, 인구 감소 등으로 기능이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감포는 경주의 최대 수산업 기지로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감포의 어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병행했기에 어업을 세습하거나 상업적으로 전업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러한 배경은 외지 선원들이 감포로 유입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초기에는 구룡포, 울산, 부산 등지에서 선원이 왔으며, 최근에는 외국인 선원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감포항의 어업 인력 구조에 변화를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감포항은 단지 어업 기지가 아니라 문화와 공동체의 공간이기도 하다. 감포시장 일대에는 아직도 옛 다방과 실비집들이 남아 있으며, 그 사이로 감성적인 트렌디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다. 또한 제주에서 건너온 해녀들이 감포 해녀들과 함께 수십 년간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독특한 해양문화의 장이다.
감포항의 아침은 새벽 3~4시 어물 하역으로 시작된다. 동해의 생명력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 순간, 감포는 여전히 살아있다. 감포깍지길, 해국길, 감포 우물 등은 시간이 멈춘 듯한 감포의 원형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근대 해양문화 유산의 현장으로 주목받고 있다.감포는 또한 조선총독부 우정국에서 발행한 기념우표와 엽서에도 등장할 만큼, 일제시대 명승지로도 이름을 알렸다. 송대 끝자락의 자연경관은 다양한 성씨의 고총과 함께 풍광을 이뤘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감포`라는 슬로건으로 감포의 해돋이는 유명세를 탔다. 이 일대는 지금도 해맞이 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감포는 독특한 해양 민속문화를 지닌 마을이기도 하다. 2022년 5월 열린 `경주 바다 풍어제`는 감포 주민들의 오랜 바다 신앙과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행사였다. 당산제, 작두타기, 부정거리 등의 전통 무속의례가 하루 종일 이어졌고, 이 무대는 감포의 전통이 단절되지 않고 계승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장이 되었다.
감포항의 역사에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통계뿐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정서가 오롯이 배어 있다. 어업이 삶의 중심이었던 시대, 바다에서 얻은 소득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가족이 생계를 이어가고, 마을이 유지되었다. 그러한 감포항의 기억은 단순한 지역의 역사를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2025년 감포항 개항 100주년은 단지 과거의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이 항구가 지닌 역사와 문화, 주민들의 삶의 이야기는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하는 기반이 된다. 감포항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바다 위의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