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끝나지 않는 재선충과의 전쟁… ‘소나무 없는 산’이 해답?   [기획 – 경주, 소나무재선충 확산세 심각]⓵ 매년 재선충 방제에 100억원대 투입해도 확산⓶ 소나무재선충 고사 원인 ‘진단은 없고 방제만’❸ 방제 대안 없어 ‘역부족’...대체 수종 전환 시급     경주를 비롯한 포항, 울산 등 동해 남부권 도시들은 ‘해오름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문화·관광 협력을 이어왔지만, 요즘은 또 다른 동맹으로 불리고 있다. 바로 ‘소나무재선충 동맹’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이라는 강력한 외래 병해충이 지역 산림을 휩쓸면서, 이들 도시는 공동의 고통을 겪고 있다.   경주시의 경우, 전체 임야 면적 약 62,000ha 가운데 18%인 1만1천여 ha에서 감염 징후가 확인됐다. 특히 남산권역, 감포, 내남 등에서 집중적으로 피해가 나타나고 있으며, 해마다 감염 지역은 확산 일로에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소나무 에이즈’라는 별명처럼 감염 속도가 빠르고, 감염된 나무는 수개월 내에 고사에 이른다.   이로 인해 경주시는 2020년대 초부터 대규모 긴급 방제작업에 돌입했다. 매년 1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감염목 제거, 예방적 수간주사, 항공 방제 등에 투입되고 있지만, 확산세는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감염목은 벌채 후 파쇄하거나 고열 소각하는 방식으로 처리되지만, 이는 일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 생태계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임시 조치가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반복되는 방제, 근본 대책은 없다경주시 산림당국은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를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기간’으로 정해, 정밀 예찰과 긴급 대응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드론과 AI 기반 항공 영상 분석을 활용해 감염목을 조기에 파악하고, 나무에 약제를 주입해 병해충 감염을 억제하는 수간주사도 확대 시행 중이다. 그러나 이런 방제 중심 대응은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   경주시청 산림과 관계자는 “감염 의심목 발견 시, 감염 여부 확인 절차 없이 선제적으로 벌목 및 소각 조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환경적·생태학적 복합 요인에 대한 분석 없이 ‘감염되면 베어내는’ 단선적 방식에 그치고 있다. 특히 감염 확산의 주요 매개체인 북방수염하늘소와 그 서식지에 대한 근본적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지역 주민의 민원도 방제의 큰 걸림돌이다. 벌채작업에 따른 소음과 분진, 산림 훼손에 대한 우려로 인해 일부 마을에서는 방제 범위를 축소하거나 조정해야 했다. 현장에서는 “감염목만 없애서는 안 되고, 연접한 완충지대까지 포함해 벌채해야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혀 실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소나무 중심’ 산림 관리의 한계한국의 산림은 오랫동안 소나무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이는 조선시대부터 땔감, 건축재, 제례용 등 다양한 용도로 소나무가 활용되며 형성된 전통적 풍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일 수종 집중은 생태적 불균형을 초래했다. 특히 병해충 감염 시 회복탄력성이 크게 떨어지는 구조가 됐다.   경주의 경우 전체 산림의 약 60~65%가 소나무류로 구성돼 있어 병해충 확산에 극히 취약하다. 다양한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면 재선충이 이동·증식할 여지가 줄어들겠지만, 현재 구조는 그 반대다. 더욱이 기후 변화로 겨울철 기온이 상승하면서 북방수염하늘소의 월동 가능성이 높아졌고, 재선충의 활동 기간도 길어졌다.   기존 방제 방식이 단기 효과에 그치는 이유는 이처럼 산림 구조 자체가 위기에 취약한 데 있다. 이젠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대체 수종 전환 논의, 이젠 피할 수 없다소나무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숲`을 만드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감염 위험이 낮고, 병해충 저항성이 뛰어난 대체 수종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거론되는 대체 수종으로는 참나무류(갈참나무, 신갈나무 등), 낙엽송, 상수리나무, 헛개나무, 녹나무 등이 있다. 이들은 생태적 기능이 다양하고, 지역 특산 자원화 가능성도 높아 관광·산림자원으로의 활용도 기대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은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다. 토양 적응 문제, 생장 속도 차이, 조림 실패 사례 등이 발생하고 있다. 조림 이후 3~5년간은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병해충 면역뿐 아니라 지역 기후와의 조화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소나무에 대한 문화적 애착이 깊은 주민 정서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도 과제다.생태계 회복과 지역 특화 수종의 공존 모색단기적 방제 정책에 집중하던 경주시는 이제 중장기 생태 복원 전략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숲을 조성하는 것이 소나무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특히 경주는 신라 천년의 수도로서 전통 경관과의 조화를 고려한 ‘경관형 대체 수종’ 도입이 필요하다. 참나무류는 고건축물과 잘 어울리고, 녹나무는 향기와 항균 기능으로 힐링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단풍나무, 느티나무 같은 경관성 수종은 계절 변화와 어우러져 관광 자원으로도 높은 잠재력을 가진다.   또한 시민과 행정, 전문가가 함께하는 참여형 산림 관리가 중요하다.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숲의 변화를 이해하고 감시·관리하는 생태 시민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생태교육, 모니터링,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함께 만드는 숲’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숲을 지킨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소나무재선충병은 단순한 병해충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을 관리하는 방식, 숲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신호다. 나무 한 그루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숲 전체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다음 세대에 살아 숨 쉬는 생태계를 물려주기 위한 구조적 개혁이 요구된다. 경주시가 이제라도 단기 방제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생물다양성과 지역 생태계 회복을 아우르는 대체 수종 중심의 지속가능한 산림 전략을 추진한다면, 소나무의 비명은 ‘생명의 숲’으로 다시 울려 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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