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의 혈세로 설치된 황룡사지 임시주차장의 무인 주차 정산 시스템이 7년째 단 한 번도 가동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은 경주시 행정의 총체적 난맥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공공 예산이 마치 ‘주머니 돈’인 양 낭비되고, 사업의 기획부터 집행, 사후 관리까지 전 과정에서 무책임이 반복되는 현실에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문제의 무인정산 시스템은 2018년 황룡사지 역사문화관 인근 임시주차장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총 사업비 24억원 중 약 1억4천만원이 이 시스템 구축에 투입되었지만, 주차장은 애초에 무료 운영을 전제로 설계된 임시 시설이었다. 주차 요금을 받을 계획도 없었는데도, 주차비 징수를 위한 정산기와 차량 인식기를 들여온 것은 정책 기획 단계부터 심각한 착오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이후의 행정이다. 고가 장비가 설치된 후 7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가동되지 않았고, 현재는 대부분 고장 난 채 먼지만 쌓여 있다. 그런데도 경주시는 명확한 해명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산 시스템이 왜 설치됐는지, 언제부터 어떻게 운영하려 했는지도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책임 소재는커녕, 관련 공무원에 대한 감사나 징계도 전무하다.
이런 현실은 행정의 무능을 넘어 무책임으로까지 읽힌다. 사적지를 활용한 관광 기반 확장이라는 목적은 나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이처럼 졸속이었다면 이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임시`라는 말의 의미조차 무시한 채, 고가 장비를 들여 설치한 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를 위한 행정이었는가 되묻게 한다.
무인정산기 방치 사태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다. 이는 시스템적 허점이 만든 고질적인 세금 낭비이자, 시민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다. 이제라도 경주시는 관련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감사와 징계를 통해 책임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동시에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시급하다. 시민의 세금은 실험용 예산이 아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행정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