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20년 동안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도 소나무재선충병의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수십만 본의 피해목을 제거하고 방제에 나서고 있지만, 감염 지역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이제는 경주시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경주의 소나무숲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경주시는 2025년 APEC 개최를 앞두고 주요 도심경관지역과 문화재 보호구역을 중심으로 집중 방제에 나서고 있다. 올해 4월까지 360억원을 투입해 피해목을 제거하고 예방주사를 놓는 등 총력 대응 중이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며, 재선충병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2004년 양남면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현재 경주시 20개 읍·면·동으로 피해 면적이 확대되었으며, 동경주지역뿐만 아니라 외동읍과 보문단지까지 감염지대가 넓어졌다. 2024년 기준 경주지역 감염지대는 약 7,000~8,000ha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일부 지역에서는 감염률이 80%를 넘어서고 있다.   전국적으로도 재선충의 확산세는 심각한 수준이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 218만본으로 정점을 찍었던 피해목 수가 2021년 31만본까지 감소했다가, 2023년 107만본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 35년간 산림청과 지자체가 1조 5천억원을 들였음에도 확산세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기존 방제 방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방제 방식은 물리적 방제(감염목 제거 및 소각)와 화학적 방제(예방주사)로 나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숲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오히려 장기적인 산림 건강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 특히 2023년 산림청이 환경 보호를 이유로 항공방제를 중단하면서, 기존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확산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경주시가 20년 동안 1,000억원을 투입하고도 확산을 막지 못했다면, 단순히 예산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소나무재선충병 확산 이후의 대책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근본적인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감염 실태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경주시는 소나무재선충병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시행하지 않았다. 피해 면적과 감염 본수의 전수조사를 통해 정확한 데이터가 확보되어야 실효성 있는 대책이 가능하다. 둘째, 소나무 숲의 생태적 복원력을 강화해야 한다. 감염목 제거와 예방주사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건강한 숲을 조성해 자연적으로 저항력을 키우는 방법을 병행해야 한다. 다양한 수종을 혼합하여 조림하는 등 숲의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국제적인 연구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 일본, 대만 등에서도 소나무재선충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한 저항성 소나무 개발, 천적 활용 등의 새로운 방법을 연구 중이다. 한국도 이러한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끝으로, 시민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산림청과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감염된 소나무를 조기에 발견하고 신고할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더 이상 늦출 수 없다. 경주의 소나무 숲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이자 자연경관의 핵심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미봉책에 의존한다면, 결국 소나무가 모두 고사하고 난 뒤에야 방제가 끝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제는 단기적인 예산 투입을 넘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주는 소나무와 함께 천년의 숲을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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