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K씨는 이해하지만 부자들은?시장(市場)에서 장사를 하는 K씨는 인색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주변 사람들조차도 고개를 짤레짤레 흔든다. 수십억대 재산을 갖고 있는 부자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K씨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술좌석이 있으면 아무도 앉으라고 권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슬그머니 의자를 당겨서 2천원을 내고 막걸리 한 병을 마신다. K씨는 임대료나 인건비, 안주 등의 비용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다. 한 병에 원가 1천원짜리 술을 2천원 내고 마신다며 그것도 오감타고 여기는 것 같다.
K씨가 어느 날 시장에서 사돈을 만났다. 사돈에게 대접해야 할 처지에 놓인 K씨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지인(知人)이 자기 눈을 의심했단다.
사돈과 막걸리 두 병을 마시고는 자기가 마신 한 병 값 2천원만 내고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홀연히 나가더라는 것이다.
이 지인이 훗날 그 사돈에게 K씨가 너무하지 않더냐고 물었더니 “상관없어요. 사돈 재산 나중에 다 우리 아들 게 될텐데요 뭐.” 아무렇지도 않는 것처럼 대답했다. 이 사돈은 K씨의 딸에게 아들 장가를 보낸 것이었다. 그런 K씨가 평생 실수한 게 딱 하나 있다. 적십자회비를 낸 것이다. 적십자회비가 지로용지로 오기 때문에 안 내도 되는 자발적 회비인줄 몰랐던 것이다. K씨는 단 한 번도 불우이웃을 위한 성금을 낸 적이 있을 리가 없다. K씨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아끼는 재미로 사니까. 자왈 여유주공지재지미 사교차인 기여부족관야이(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주공처럼 훌륭한 재능과 덕목을 갖고 있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도 없다. 『논어』 태백 11장)라는 공자의 말을 K씨는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공자는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사람 다음으로 교만하고 인색한 사람을 싫어했다.1347년 백년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의 에드워드 왕이 프랑스의 요충지 항구도시 칼레의 시민들에게 권력자와 부자 6명이 스스로 나서서 처형을 받으면 나머지 시민들을 살려주겠다고 제안한 내심에는 권력자와 부자 중에 단 한 사람도 자발적으로 죽으려고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앤드류 시장에 이어 가장 부자였던 쟈끄 드 뷔상뜨는 아들까지 데리고 처형장으로 나왔다. 시민들을 살리고 대신 죽기 위해서였다.
한 사람도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던 에드워드 왕이, 곧 태어날 왕자에게 불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설을 믿은 왕비의 간청으로 처형을 포기했다는 데서 유래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K씨는 알 턱이 없다. 칼레의 시민을 살린 6명의 용감한 지도자의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오귀스트 로뎅이 1889년 10년만에 완성한 작품의 이름이 ‘칼레의 시민들’이라는 역작이라는 사실 역시 K씨가 알 턱도 없다.K씨와는 달리 경주에서 내노라하는 부자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런 부자들이 경주시의 이번 ‘희망 2019 나눔캠페인’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이 부자들은 경주시의 정책적 배려, 혹은 유착의 혜택을 입은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고소득 전문직 인사들과 단체 역시 참여가 저조했다. 내년에는 경주의 부자들과 전문직 개인과 단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해 본다.<김영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