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인생에 목표가 있는가?인생의 목표는 무엇일까?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매진하고 추구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전 세계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인생에는 목표가 없다는 게 정설이다. 이들이 발견한 인류의 단 하나의 공통적인 행위는 ‘아이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고 달래준다’는 것이었다. <인더스텔라> 영화 대사에도 나오는 말이다. 법륜스님도 “인생은 목표가 없다”는 법문을 자주 한다. 법륜스님은 “그냥 살면 된다.”고 한다. 목표가 없으면 뭐가 있을까? 과정만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를 지낸 한국인이 퇴직을 하고 삼성이 운영하는 최고급 요양원에 머물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이 분의 말에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돌아보니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었고 그냥 먹고 싸는 것 뿐이었다.” 그렇다면 인생은 너무 허무하거나 무의미하지 않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 있지도 않는 목표를 찾아 허우적대다가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 게 인생일 가능성이 많다. 마치 무지개를 찾아 떠나는 것처럼. 무지개는 잠시 후면 사라진다. 필자의 경험과 견문에 의하면 인간의 죽기 직전 정신을 잃어버린다. 정신 자체가 혼미하다. 판단력은 물론 없다. 간혹 죽기 직전 힘을 모아 유언처럼 하는 경우가 있다지만 극히 드물고 또한 내용은 거의 부정확하다. 무의식에 가깝다.거의 100%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다. 암으로 심하게 고통 받는 사람 역시 정신을 놓아버린다. 극심한 고통 앞에서는 평생을 믿었던 하나님도 부처님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단지 빨리 죽게 해달라고 사정할 뿐이란다. 목사도 스님도 예외가 아니란다. 어느 호스피스 의사에게 직접 들었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말이 생긴 이유에서 유추해보면 인간이 죽기 직전에는 얼마나 판단력이 없어지는지 알 수 있다. 중국에 어느 노인이 죽기 전 사랑하는 첩이 있었다. 당시는 순장(殉葬) 풍습이 있던 때라 아들에게 자기가 죽으면 첩을 순장시키지 말고 다른 데에 시집을 보내라고 유언했다가 죽기 직전에 마음을 바꿔 순장시켜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어기고 시집을 보냈다. 친척들이 “왜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자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정신이 없는 상태였고 그 전에 정신이 맑았을 때의 말을 따랐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이 아들이 전장터에 나갔다가 적장에게 쫒겨 도망치는데 적장이 풀로 묶어놓은 덫에 걸려 넘어지자 반대로 적장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날 밤 꿈에 웬 노인이 나타나 “내 딸을 순장시키지 않고 시집을 보내준 고마움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풀을 묶어 적장을 넘어지게 했다.”고 한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정신이 맑을 때에는 첩의 인생을 생각해서 시집을 보내라고 했지만 죽기 직전에는 사랑하는 첩이 시집간다고 생각하니 시기, 질투의 감정만 남았던 것이다. 즉, 사랑하는 첩을 남에게 시집보내기 싫었을 뿐이다. 배가 아파서다. 달리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성철스님이 입적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참선 잘 하거래이”라고 한 말도 나는 믿지 않는다. 제자들과 교단의 가치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었을 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지원을 중심으로 나의 뜻을 이어달라”고 유언을 했다는 정치 9단 박지원 의원의 말도 나는 믿지 않는다. 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병석에 몇 달 누워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느 날 침대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회 먹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이야말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한 사람의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이자 이벤트에 불과하고 때로는 이용되기도 한다. 현대의 과학자들의 보편적 견해에 의하면 현재까지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것 두 가지는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와 ‘우주에는 특별한 곳(중심이나 가장자리 등 특정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명확한 사실이다. 인생에서도 목표가 있으면 얼마나 편리하고 단순하고 좋을까? 목표를 이루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은 없다. 인생을 완벽하게 살았고 죽음을 완벽하게 이해했던 스콧 니어링의 유언에서 인생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스콧 니어링의 유언>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나는 자연스럽게 죽게 되기를 원한다.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원하며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원한다.의학은 삶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하니까.그럴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가까워 왔을 무렵에지붕이 없는 탁 트인 곳에 있고 싶다.그리고 나는 단식을 하다가 죽고 싶다.죽음이 다가오면 음식을 끊고할 수 있으면 마찬가지로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그러므로 어떤 진통제나 마취제도 필요 없다.나는 되도록 빠르고 조용히 가고 싶다.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으니 오히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과 위엄, 이해와 평화로움을 갖추어 죽음의 경험을 함께 나눠주기 바란다.죽음은 무한한 경험의 세계.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았으므로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죽음은 옮겨감이나 깨어남이다.삶의 다른 일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법이 요구하지 않는 한어떤 장의업자나 그 밖의 직업으로 시체를 다루는 사람이이 일에 끼어들어선 안 된다.내가 죽은 후 되도록 빨리 친구들이내 몸에 작업복을 입혀 침낭 속에 넣은 다음,평범한 나무상자에 뉘길 바란다.상자 안이나 위에 어떤 장식도 해서는 안 된다.그렇게 옷을 입힌 나의 몸은 화장터로 보내져 조용히 화장되기를 바란다.어떤 장례식도 열어서는 안 된다.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식으로든설교사나 목사, 그 밖에 직업 종교인이 주관해서는 안 된다.화장이 끝난 뒤 되도록 빨리 나의 아내가만일 나의 아내가 나보다 먼저 가게 되어서 그럴 수 없을 때에는 누군가 다른 친구가 재를 거두어바다가 보이는 나무 아래에 뿌려주기 바란다.나는 맑은 의식으로 이 모든 요청을 하는 바이며이런 요청이 내 뒤에 계속 살아가는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되기를 바란다.✽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미국. 1883-1983. 작가. 경제학자. 사회학자. 환경운동가. 펜실베니아대학 교수. 스콧 니어링은 100세를 맞이한 해에 그가 생전에 한 유언처럼 곡기를 끊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내친 김에 스콧 니어링의 좌우명도 살펴보자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미리 계획을 세울 것일관성을 유지할 것꼭 필요하지 않는 것은 멀리할 것되도록 마음을 흐트려지지 않게 할 것그날그날 자연과 사람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 갈 것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것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계속 배우고 익혀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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