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풍미(風靡)김종필 전 국무총리(이하 그의 호 ‘운정’으로 부름)가 세상을 떠났다. 언론에서는 일세를 풍미했다는 표현을 썼다. 풍미(風靡)는 바람에 초목이 쓰러진다는 뜻으로 어떤 사조나 사회적 현상 등이 널리 사회를 휩쓰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풍운아라고도 하는데 바람처럼 구름처럼 세상을 살았다는 뜻일 게다. 풍운아는 사전에 ‘좋은 기회를 타고 활약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고인의 훈장 추서를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어쨌거나 운정은 일세를 풍미한 풍운아였음에 틀림없다. 운정 스스로 미리 써놓은 묘비명을 풀어보자.* 묘비명 원문*「思無邪」를人生의 道理로 삼고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無恒産而無恒心」을治國의 根本으로 삼아國利民福과 國泰民安을 具現하기위하여 獻身盡力 하였거늘晩年에 이르러「年九十而知 八十九非」라고 嘆하며數多한 물음에는「笑而不答」하던 者-內助의 德을 베풀어준 永世伴侶와함께 이곳에 누웠노라銘 雲庭 自僎書 靑菴 高崗“사악함이 없기를 인생의 도리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나라가 유지될 수 있다는 신념을 치국의 근본으로 삼아 국리민복과 국태민안을 구현하기 위하여 헌신전력하였거늘, 만년에 이르러 생각해보니 지난 세월 모두 허무하고 허물뿐이라고 한탄하면서 많은 물음에는 웃으며 넘기던 자-내조의 덕을 베풀어 준 평생의 반려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운정 스스로 짓고 청암 고강선생이 쓰다. 해석-편집자思無邪(사무사)를 인생의 도리로 삼고 한 평생 어기지 않았으며‘思無邪’는 공자의 <논어> 위정편 2장에 나오는 말이다. ‘간사함이나 사특함이 없는 생각’이다. ‘올바른 생각’이라는 뜻이다. 사무실이나 식당 같은 데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말이다. 어느 제자가 “<시경>에 나오는 시의 의미가 주는 가르침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뭐라 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공자에게 물었을 것이다.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시 3백수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간사함이 없는 생각”이라고 하셨다. 시 3백은 어림잡아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는 305편이다. 운정이 과연 간사함이 없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았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전두환이 운정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가택수색 했을 때 금송아지가 나왔다는 말도 있고, 90년대에는 모 그룹에서 정치자금 10억원을 받은 게 밝혀졌지만 검찰에서 덮기도 했다. 이 외에도 많은 재산을 축적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과연 ‘사무사’를 평생의 도리로 여기고 실천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無恒産而無恒心(무항산이무항심)을 치국의 근본으로 삼아無恒産 無恒心(무항산 무항심) 有恒産 有恒心(유항산 유항심)이라는 맹자(孟子)의 글에서 따온 말이다. 재산이 없으면 항상하는 마음도 없다. 재산이 없으면 넉넉한 마음도 없다. 지속적인 생산이 없으면 지속적인 마음도 없다라는 뜻. 우리 속담으로 치면 ‘곳간에서 인심난다’와 의비가 상통한다. 국가와 국민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다. 많은 비판을 받았던 한일회담이나 독재정치도 국가와 국민이 살아남기 위하여 어쩔 수 없었다는 소신을 밝히고 있다. 변명이 아니냐고 지적을 하는 사람도 있다.
年九十而知 八十九非(연구십이지 팔십구비)공자의 <논어 헌문편 26장>에 나오는 말이다. 據伯玉 行年六十知 五十九年之非(거백옥 행년육십지 오십구연지비)‘거백옥’은 위나라의 대부. 공자가 13년 동안 천하를 주유할 때 거백옥의 집에 몸을 의탁한하며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거백옥이 사자(使者-심부름꾼)를 시켜 노나라로 돌아가 있던 공자에게 안부를 묻는 심부름을 보냈다. 공자가 물었다. “그래, 부자(夫子)께서는 뭐하며 지내시는가?” “夫子欲寡其過 而未能也.(부자욕과기과 이미능야)-대부께서는 허물을 적게 하시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 감탄하면서 두 번이나 말하기를 “使乎 使乎(사호 사호)-훌륭한 사자로고. 훌륭한 사자로고”. 예상치 못한 사자의 대답을 칭찬하면서 그 주인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겠느냐며 거백옥을 칭찬한 말에서 유래한 글이다.
거백옥은 당시 60세였다. 나이 60이 되어 지난 59년의 잘못을 깨닫는다는 뜻. 운정은 나이 90에 89년의 잘못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이 글을 지었다. 운정은 나이 90이 되었으나 지난 세월 돌아보니 허물 뿐이었다는 의미이리라. 그가 평소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한 말과 맥락이 비슷하다. 운정 스스로 ‘나이 90에 89년의 잘못을 깨닫는다’라고 해석하면 되지만 정확한 뜻은 본인만이 알 것이다.
笑而不答(소이부답)-대답 대신에 그저 미소만 짓는다. 답을 하지 않고 그냥 웃고 넘긴다. 대답 대신 웃고 만다.이태백의 시 <산중문답>에 처음 나온 말이다.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나에게 묻기를 “무엇 때문에 벽산에 사느냐?”나는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하니 스스로 마음 한가롭다네.복숭아꽃 물 따라 흘러가니별천지요 인간세상이 아니로다.“세상에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수수게끼가 있는데 답이 노환(老患)이다. 노환이 오면 반드시 죽는다. 운정은 1926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치면 93세다. 고래(古來)로 난세의 영웅은 대개 전장터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침대에서 편안히 자연사한 영웅이 별로 없다. 운정은 인간으로서 기력이 다해 자연스럽게 세상을 하직했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하는 말로 천수(天壽)를 다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42장에는 强梁者 不得其死 吾將以爲敎父(강량자 부득기사 오장이위교부-뻣뻣하고 강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죽지 못한다. 나는 이를 가르침의 으뜸으로 삼으려 한다)라고 했고, 공자(孔子)도 <논어>선진편 12장에서 ‘若由也 不得其死然-약유야 부득기사연-유(由)는 공자의 제자 자로)와 같은 사람은 자연스러운 죽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자로는 성격이 급하고 과격하였다 함)이라 하여 살아생전 험한 꼴 당하지 않고 천수를 다하여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도덕경 44장-만족을 알면 욕을 먹지 않고 멈춤을 알면 위태하지 않다. 그러면 오래 갈 수 있다)한 셈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에는 모든 일에서 정점에 이르기 전에 멈춰야 안전하다고 가르치는데 운정은 이를 그대로 실천한 사람이다. 정점에 이르면 위태하고 내려올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무리하여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고 한다. 2인자로 만족하고 킹메이커로서 만족했다. 생전에 감옥에도 안 갔다. 큰 병도 없었다. 부귀영화와 함께 천수를 누렸다.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지 두고 볼 일이다.*운정이 마음대로 하지 못한 게 하나 있다. 1990년 민자당 최고위원을 지낼 당시 미국에 가 있던 아들 김진 씨가 과테말라 출신 여성을 데리고 와 서울의 한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만 해도 국제결혼이 매우 드물던 시절이었다. “우리 김해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인도의 부인을 맞아 진박부터 외국분과 결혼하는 전통을 남겨서인지 내 아들도 외국사람과 결혼하게 됐다”고 웃고 넘겼다지만 (짐작이지만) 천하의 운정도 자식에게는 이길 수 없었던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