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과연 천리마로고...어느 나라의 왕이 있었다. 이 왕은 백성들로부터 성군(聖君)으로 칭송받던 훌륭한 임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녘 꿈에 저승사자가 나타나 “왕은 이제 정해진 수명이 다했으니 생을 거두어 가야겠소. 사흘 뒤 이 시간에 데리러 올테니 그리 알고 준비하시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건강했을 뿐만 아니라 환갑도 지나지 않았던 왕은 청천병력 얼마나 놀랐는지 정신을 빼놓을 뻔 했다. 아침 일찍 신하들을 소집한 왕은 어젯밤 꿈 이야기를 하면서 대책을 논의했다. 저승사자가 데리러 온다는데 신하들이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할 수 없이 전국에 영을 내려 나라의 현자·선인들을 모두 불러들여 저승사자를 못오게 하는 방안을 내놓으라고 닦달했지만, 평소에는 귀신을 마음대로 부린다고 큰소리치던 현자·선인들도 묵묵부답, 어느 한 사람에게도 속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자 뒤늦게 도착한 어느 현자가 저승사자를 피할 수 있는 그럴듯한 방법을 내놓았다. 그 방도라는 게 36계. 멀리 도망가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제아무리 저승사자라한들 천리쯤 도망 가버리면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 대책을 세우느라 이틀을 허비한 왕은 나라에서 가장 빠르다는, 이른바 천리마를 타고 밤을 세워 말 그대로 ‘천리마야 날 살려라’ 하룻밤에 천리를 달려 국경 근처의 바닷가 언덕에 도착했다. 해가 솟아 오려는지 수평선 너머 동쪽 하늘에는 붉은 빛이 들기 시작하는 새벽녘이었다. 저승사자가 온다고 기별한 바로 그 시각이었다. “제 아무리 저승사자라도 천리를 도망왔는데 설마 여기까지 따라 오지는 못하겠지.”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돌아다보니 “과연 천리마로고....하룻밤에 천리를 달리다니..”라며 저승사자가 말 엉덩이를 툭툭치고 있는 게 아닌가.  왕은 어찌나 놀랐는지 하도 기가 막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어버렸다. 저승사가 사흘전 말한 정확한 그 시각에 왕이 죽은 것이다. 제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운명 앞에는 부처님 손바닥이다. 운명이 있는가 없는가를 두고 인간은 수많은 논쟁을 벌여 왔다. 공자는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하여 운명이 있는 듯이 말했다. 물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말했지만 어쨌거나 공자는 하늘, 곧 운명을 믿었다. 부처는 점(占) 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했다. 모두 원인(業)의 결과라는 것이다. 인과의 법칙은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다고 한다. 과연 운명이 있을까 궁금하다.